오길비의 삶과 생각들

[지난 9월은 미국 광고계의 살아있는 전설 데이빗 오길비(David Ogilvy)가 자신의 광고회사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광고인생을 시작한 지 꼭 50년이 되는 때이다. <에드버타이징 에이지(Advertising Age)> 지에서는 오길비의 광고인생 50주년을 맞아 장장 30 페이지에 걸친 지면을 할애하여 그의 광고인생과 광고철학을 조명했다. 또한 미국 유수의 광고주 회사와 매체사들이 이를 축하하는 광고를 실음으로써 이 특집에 참여했다. 오길비를 통해 오늘날의 미국 광고계를 이끌고 있는 광고인들의 삶과 그들의 내면풍경을 살펴보기로 한다. ]

왜 아직도 오길비인가?

새로운 매체기술의 발전,시장환경의 글로벌화, 소비자 트랜드의 변화, 그리고 크리에이티브의 신기법 등등...
매일같이 달라지는 미국 광고계의 변화를 주시하노라면 그 현란함에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따라서 미국 광고계의 변화무쌍함에 압도되지 말고 그 근저에 흐르는 맥을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러한 광고 현상을 만들어 내는 주체인 광고인들의 삶과 광고철학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드버타이징 에이지>에서 마련한 오길비 특집은 오늘날 미국 광고계의 복잡다기한 현상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떤 광고철학을 기반으로 생겨났는가를 이해하는데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왜냐하면 오길비야말로 미국 광고계의 어제와 오늘을 있게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오길비가 차린 그의 광고회사는 지금 전세계 70개국, 377개 사무소에서 1만 여명에 이르는 직원을 거느리고 연간 88억 달러의 빌링을 자랑하는 거대한 커뮤니케이션 그룹이 되었다.

물론 오길비가 자신의 회사에서 은퇴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는 회사의 창업자로서 여전히 중요한 의사결정에 관여하고 있다. 오길비의 뒤를 이어 회장이 된 쟉 엘리엇(Jock Elliot)은 최근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는 언제나 나의 보스였다. 비록 내가 오길비 광고회사의 회장이 되었을 때에도 나는 CEO란 타이틀을 사용하지 않았다. 데이빗이 살아 있는 한 그것을 부적절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현 회장인 셸리 라자러스(Shelly Lazarus)의 말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녀는 25년 전 오길비의 광고회사에 들어와서, 오길비에게서 직접 광고를 배우고, 마침내는 오길비 그룹의 회장 자리에 까지 오른 오길비 사단의 한 일원이다. 라자러스는 그녀가 오길비와 직접 만나 중요한 대화를 나누는 마지막 회장이 될 것이라는 예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오길비와 개인적으로 아느냐 모르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비록 그가 오길비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 하더라도 매일같이 오길비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오길비가 오늘날 미국 광고인들에게 아직도 강력한 영향력 행사하고 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아직까지 미국 광고계에서 오길비는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전설이다.

광고로 가는 길목 : 19세기 농부에서 요리사까지

그렇다면 오길비의 광고인생과 그의 철학은 과연 어떠하였는가?
오길비가 광고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948년에 그는 벌써 30대 후반이었다. 30대 후반이라면 보통은 자신의 경력을 더욱 심화 발전시킬 나이이다. 하지만 그때에 그는 자신의 진로를 새로 설정하는 모험을 단행한 것이다. 오길비의 광고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다채로운 인생역정을 알 필요가 있다.

1911년 런던에서 태어난 오길비는 모든 면에서 뛰어난 그의 형과 누나들 틈에서 심한 열등감을 느끼며 자라야 했다 그가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감으로써 잠시 가족들을 놀라게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는 (화학에서 낙제하는 바람에) 대학에서도 제적되고 만다.

대학을 중퇴한 후 그는 에딘버러의 한 사회복지기관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지만 곧 불란서로 건너가 파리의 한 호텔에서 주방장의 조수로 일했다. 가족들의 설득으로 다시 영국으로 건너온 그는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집집마다 돌며 물건을 파는 세일즈맨으로 일하기도 했다. 1936년, 그의 형 프란시스가 자신이 매니저로 있는 영국의 한 광고회사에 오길비를 인턴사원으로 취직시켜 줬다. 그곳에서 일하던 그는 미국의 광고기법을 배워야 한다고 회사를 설득하여 안식년을 얻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미국으로 건너간 오길비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서 조사회사인 갤럽에 취직했다. 그는 특히 헐리우드에서 일하면서 영화대본의 사전조사, 트랜드 예측, 영화스타의 인기측정 등의 일을 했다. 스코틀랜드의 세일즈맨 경험과 갤럽에서의 조사 경험이야말로 훗날 판매와 조사를 강조하는 그의 광고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차 대전 중에는 워싱턴에 있는 영국대사관의 비밀정보국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느닷없이 가족들을 데리고 랭카스터에 있는 애미시(Amish) 농장으로 들어갔다. 애미시는 지금까지도 19세기풍의 전원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미국 영화에 가끔 등장할 정도로 반현대적인 곳이다. 애미시의 목가적이고 반문명적인 전원생활에 매력을 느낀 그는 19세기의 농부스타일로 더부룩하게 턱수염을 기르고 마차를 몰면서 3년 동안 담배농사를 지었다.

"애미시에서 지냈던 3년간의 생활은 내 인생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때 나는 확실하게 깨달았다.내가 농부로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훗날 오길비는 그때를 이렇게 회고했다.그리하여 그는 가장 전원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이고 전통적인 애미시의 농부에서 가장 도시적이고 자본주의적이며 첨단적인 광고인으로 인생경로를 바꿨다. 30대 후반에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나는 역사학자가 될 머리도 없었고 농부가 될 만큼의 체력 없었다. 내 앞에 펼져졌던 일 중에서 광고가 가장 낳았다. 내 생애 전체를 놓고 볼 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광고였다"

그는 스스로를 광고의 고전주의자(classicist)라고 자처할 정도로 누구보다도 광고인의 윤리와 품격을 강조한 광고인이었다. 바로 이러한 경험들이 그의 광고철학에 반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광고인 오길비 : 비로소 발견한 자신의 길

야생마같이 날뛰던 자신의 삶에 재갈을 물리면서 그는 자신이 선택한 새로운 일에 무섭게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가 찾을 수 있는 광고자료는 모조리 찾아서 읽고 매일같이 새벽 3시까지 일을 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미국의 광고사의 맥락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가 광고를 발견한 3년 후, 광고계가 드디어 그를 발견하게 되었다.

1951년 그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헤서웨이 셔츠를 입은 남자(The Man in the Hathaway Shirts)'라는 광고를 만들어 냄으로써 매디슨 에비뉴에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당시 헤서웨이 셔츠의 광고예산은 3만불에 불과하여 회사에서는 그 일을 맡는 것에 대해 망설였다고 한다. 하지만 광고주가 한 글자도 카피를 고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자 오길비가 맡아 만든 이 광고는 그 후 25년 동안이나 집행된, 그야말로 광고사에 남는 불후의 고전이다.

오길비의 명성을 다시 한번 드높힌 광고는 롤스로이스 광고이다. 그가 작성한 헤드라인인 '시속 60마일로 달릴 때 신형 롤스로이스에서 들리는 가장 큰 소리는 시계소리입니다" 는 사실 영국의 자동차 전문 잡지의 기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오길비의 진실주의(truism)를 가장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그는 저널리스트는 최고의 광고작가이며 최고의 광고는 저널리즘을 모방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오길비의 탁월함에 힘입어 그의 광고 대행사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갔다. 광고주 하나 없이 시작했던 그의 광고 대행사는 1964년 이미 미국의 20대 광고대행사에 들었고 70년대 말에는 어느덧 전세계 30여개국에 80여개 사무실을 보유한 국제적인 광고대행사가 되었다.

오길비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가 쓴 책이었다. 1963년 그가 쓴 <어느 광고인의 고백>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그의 우상파괴적인 인터뷰로 그는 광고계를 대표하는 저명인사가 되었다.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비로소 발견한 자신의 길에서 그는 그 뒤로 계속 승승장구하였다.

"나는 바다를 너무 많이 항해했다"

오길비의 삶과 광고철학은 한 마디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모순적인다. 스티픈 폭스(Stephen Fox)는 미국의 광고사를 다룬 <거울의 제작자들(The Mirror Makers)>이란 책에서 그를 '파라독스로 가득찬 사람'이라고 평하고 있다.

우선 오길비라는 인간과 그의 인생역정 자체가 너무나 모순적(ambivalence)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영국식 격식에 염증을 느끼면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즐겨 읽었고, 맨하탄의 마천루를 보고는 전율을 느낄 정도로 미국식 생활을 동경해 왔다. 하지만 매디슨가의 사무실에서도 매일 오후 4시 반이면 홍차를 마시면서 옥스퍼드식의 어휘와 엑센트를 버리지 않았다.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로 기이한 것을 좋아해서 빨간 색 멜빵과 화려한 스카프 등으로 요란하게 치장하고 대중 앞에 나타나는가 하면, 영국 신사풍의 트위드 옷과 두툼한 가죽신을 갖추고 파이프 담배를 즐겨 물곤 했다. 스스로 매디슨가의 광고쟁이들보다는 보스톤의 친구들이 훨씬 자신과 잘 맞는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의 취향 자체는 옥스퍼드적 교양과 헐리우드적 속물근성이 마구 뒤엉켜 있다. 자신의 광고회사 직원들에게는 자기 이미지 관리의 중요성과 신사적인 매너를 강조하지만, 그 자신은 대단히 수줍음을 많이 타면서도 자기과시적인 쇼맨십도 강하다고 한다. 그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그는 19세기 풍의 애미시 농장에서 목가적 생활을 추구하다가, 뉴욕의 대도시에서 가장 자본주의적 경쟁원리에 충실한 광고인으로 살다가, 은퇴해서는 12세기풍의 불란서 고성(古城)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다.

그의 광고 철학도 모순에 가득 차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흔히 그를 U.S.P.를 강조하는 로저 리브스의 하드셀(Hard Sell)과 비교해서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는 소프트 셀(Soft Sell)의 대표주자로 간주한다. 실제로 그와 로저 리브스는 처남-매부지간이면서도 사사건건 대립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미국 광고업계의 두 가지 큰 흐름을 꿰뚫고 있었던 오길비는 두 진영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즉 클로드 홉킨스(Claud Hopkins)의 '과학적 광고'로부터 연원하는 이성적 소구 중심의 클레임 학파(claim school)와 루비컴(Rubicum)으로부터 연원한 감성소구 중심의 이미지 학파(image school) 사이를 그는 배회했다.

그 자신 빅 아이디어로 충만한 크리에이터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유명한 대표작들은 이미지학파의 계보를 있는 것이 많지만 대부분의 그의 광고 작업은 클레임학파의 전통 속에서 다듬어 졌다. 폭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두 갈래로 갈라진 길을 다 가 보고 싶어 했던 사람이다. 그의 인생 전체에 있어서, 그의 광고철학에 있어서. 그리고 오길비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깊숙한 keel(배를 지탱하는 용골)이 부족한 배와 같았다.

"나는 바다를 너무 많이 항해했다." 열정에 찬, 그리하여 모순에 찬 자신의 삶에 대해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오늘, 오길비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

오길비가 통합하고자 했던 두 갈래의 큰 흐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국의 광고계를 관통하고 있다. 마케팅 전략과 과학적 조사를 중시하는 흐름과 커뮤니케이션과 크리에이티브한 빅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흐름으로.... 따라서 오길비의 광고철학이 가장 모순적이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오길비가 오늘 미국 광고계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오길비의 광고철학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셸리 라자러스는 오길비가 자신의 대행사를 차릴 때부터 현재까지 간직하고 있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오직 능력에 의해서만 평가받는 능력위주의 사회질서(meritocracy)를 견지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오길비 앤 매더의 사장인 릭 보이코(Ric Boyko)는 오길비의 광고론을 대략 여섯 가지 정도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판매를 강조하는 오길비의 철학이며 둘째는 브랜드를 관리하고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그의 전략이며 셋째는 효과적인 광고 캠페인을 가능케 하는 빅 아이디어에 대한 그의 견해,그리고 넷째는 빅 아이디어의 창출에 있어서 조사의 중용성에 대한 그의 강조이다. 그밖에 뛰어난 광고 전문가 양성의 필요성과 광고대행사 조직의 운영에 관한 그의 생각, 그리고 마지막으로 광고은 모름지기 즐겁게 해야한다는 그의 신조 등도 오늘날 미국 광고인들의 생각에 깊은 영향을 미친 요인들이다.

한편 <애드 에이지>의 존 맥도우너(John McDonough)는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오길비의 영향을 평가한다. 그는 오길비야말로 광고에서 컨슈머리즘을 가능케 한 인물로 보고있다. 왜냐하면 비록 오길비가 광고인을 주요 대상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광고에서 소비자 관점을 중시하고 광고인의 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랠프 레이더 못지 않은 컨슈머리즘의 선구자로 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오길비의 삶과 그의 광고철학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의미있는 메시지는 오늘날 미국의 광고가 매우 모순되고 복잡하며 난삽한 것 같으면서도 나름대로의 큰 흐름을 이루며 진행되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사진자료 및 설명>

<사진1> 두 얼굴의 오길비 : 오길비의 광고인생과 광고철학은 두 갈래 길에 대한 끝없는 탐색으로 늘 모순에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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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오길비의 광고인생 50주년을 맞아 미국의 유수한 매체사 및 그와 수십년간 거래해온 광고주들이 <에드 에이지> 잡지에 게재한 축하광고들

<사진 3> 오길비 초기의 대표적인 광고 2편. 헤서웨이 광고는 카피를 한 자도 고치지 않겠다고 해서 만든 광고이고, 롤스로이스 광고의 헤드라인은 자동차 전문잡지의 기사에서 따온 것이다.

<사진4> 오길비 광고회사의 최근 광고제작물들.

<사진 5> 1997년, 불란서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오길비 광고회사의 회장 셸리 라자러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오길비.그는 아직도 미국의 광고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